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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7.KR

정해진 인생, 모르는 미래. 결국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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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나무 사이로 안개 속을 향해 이어지는 도로.LOG정해진 인생, 모르는 미래. 결국 태도.
JOHN TOWNER / Unsplash

저는 사실 인생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입장에서는 전혀 모르지만, 제가 알지 못하는 어떤 법칙 안에서는 이미 정해진 흐름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물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과학 시간에 물의 전기 분해를 배운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적절한 조건에서 물을 전기 분해하면 한쪽 전극에서는 수소가, 다른 쪽에서는 산소가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신기한 일이지만, 원리를 배우고 나면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다섯 살 아이에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은 신기해하겠지만, 수소와 산소가 무엇이고 왜 생기는지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단순한 예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손에 든 공을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갓난아기에게는 이 일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유치원생이라면 직접 공을 놓아보며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력이라는 말을 몰라도요.

그렇다면 물고기에게 물의 전기 분해를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과학을 배우고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공이 떨어지는 일도, 물이 분해되는 일도 누가 이해하느냐와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일을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우리는 지식을 쌓으면서 세상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배웁니다. 관찰한 것을 공식과 법칙으로 정리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기술을 만들어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생활도 그런 과정 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는지도 함께 알게 됩니다. 양자역학처럼 일상의 직관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야도 있고, 익숙한 일조차 정확히 예측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물의 전기 분해에서는 조건에 따라 얼마나 많은 수소와 산소가 생길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인생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제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몸도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서는 수많은 물리적·화학적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물고기가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도 어떤 더 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인간보다 훨씬 넓게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는 우리의 미래도 예측 가능한 일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저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작동 방식이 있을 수 있고, 그 안에서는 제 삶도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들,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요?

누군가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무기력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정해져 있다면 무엇을 위해 노력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 정해져 있을 수 있어. 그래도 나는 잘됐으면 좋겠어.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만납니다. 누군가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원하는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합니다. 평생 함께할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믿었다가 나중에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운이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지는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적어도 복권은 사야 하듯이, 제가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쪽으로 무언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시도마저 정해진 일일 수 있겠지만, 저는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 미리 적힌 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는 직접 해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잘 안되면 어떡하냐고요. 속상하겠지요. 실망도 하고, 울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한 번 잘 안됐다고 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쉬었다가 다시 해볼 수도 있고, 다른 길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잘 살고 싶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 운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래도 잘됐으면 좋겠으니까 해보자. 잘 안됐다고 너무 오래 붙잡혀 있지는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앞으로 가보자. 그 과정도 좀 즐기고.

그렇다고 실망이나 눈물을 참지는 마. 우리는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잖아. 속상하면 속상해하고, 슬프면 울어도 돼. 그러다가 다시 살아가면 되지.

모르는 인생, 최선을 다해보자. 행복해보자.

저에게 “잘될 거야”라는 말은 미래를 안다는 선언보다는, 그렇게 믿고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결국 제게 남는 것은 태도인 것 같습니다.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저는 너무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바라는 것을 쉽게 놓지는 않는 쪽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노력도 하고, 즐기기도 하고, 잘 안되면 실망도 하면서요.

물론 가끔은 모순적일 것입니다. 이런 글을 써놓고 결과에 한참 매달릴 수도 있고, 열심히 살고 싶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친구, 정말 열심히 사는 게 맞나?” 싶을 수도 있겠지요.

저도 사람인지라 늘 같은 태도로 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돌아오고 싶은 생각은 이것입니다.

정해진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