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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7.KR

무작위함 속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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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색과 밝은 민트색의 가느다란 선들이 부드럽게 굽이치며 겹쳐지는 노이즈 기반 이미지.LOG무작위함 속의 질서
LUKENE · 청록의 흐름

인생에는 알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일들이 모두 아무런 규칙 없이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보일 때가 있고,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일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하는 더 큰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선 글 「정해진 인생, 모르는 미래. 결국 태도.」에서는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를 알 수 없는 저는 결국 직접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생각에서 조금 더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어떤 규칙이 있다면, 그 안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할 때 펄린 노이즈(Perlin noise)를 떠올립니다.

저는 이런 걸 보면 결과만 보고 넘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결국 직접 만들어봐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조금 너드 같은 성향이지요. 3년 전에도 그래서 펄린 노이즈를 공부하고 직접 코드로 구현해봤습니다.

펄린 노이즈로 만든 이미지는 얼핏 보면 불규칙합니다. 밝고 어두운 부분이 어디에 나타날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곳끼리는 값이 부드럽게 이어져, 전체를 보면 어떤 흐름이 느껴집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작위한 것 같은데 그 안에 무언가 질서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왼쪽에서는 점마다 밝기가 따로 바뀌고, 오른쪽에서는 펄린 노이즈의 덩어리가 커지고 작아지며 내부 모양도 부드럽게 변합니다.
왼쪽: 픽셀마다 달라지는 무작위 값. 오른쪽: 덩어리가 커지고 작아지며 모양이 변하는 펄린 노이즈.

왼쪽은 2차원 화면의 각 픽셀에 무작위 밝기 값을 준 모습입니다. 각 픽셀의 값이 제각각 바뀌기 때문에, 옆에 있는 점이나 조금 전의 화면을 보아도 다음 모습이 어떨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TV의 잡음처럼, 점들이 서로 관계없이 깜빡이는 느낌입니다.

오른쪽도 다음에 어떤 모양이 나타날지 한눈에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밝은 곳 옆에는 비슷하게 밝은 곳이 이어지고, 어두운 곳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부드럽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덩어리가 커졌다 작아지고, 안쪽의 밝고 어두운 모양도 서서히 달라집니다. 그 변화 속에서도 주변과 이어지는 부드러운 흐름은 유지됩니다. 정확한 모양을 예측할 수는 없어도, 그 안에 어떤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려운데,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남습니다.

규칙을 만드는 쪽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 세계를 만드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저는 3년 전 펄린 노이즈의 원리를 공부하고 직접 코드로 구현했습니다. 어떤 계산으로 값을 만들고, 어떤 변수를 바꾸면 흐름이 달라지는지 코드를 따라가며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제가 작성한 코드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순열표가 같으면, 같은 좌표에서 같은 값이 나옵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무늬여도, 그 뒤에는 정해진 계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앞선 글에서 했던 상상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우연처럼 느껴지는 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규칙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넓은 시선에서, 그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펄린 노이즈가 그런 세계를 증명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품고 있던 생각을 눈앞의 움직임으로 옮겨볼 수 있는 방법처럼 느껴집니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따라

이제 밝기를 나타내던 값을 방향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어떤 값은 오른쪽을, 다른 값은 위쪽이나 왼쪽을 가리키도록 정하면, 화면의 각 위치에 방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방향들을 화살표로 표시한 것이 아래 그림입니다. 이런 공간을 벡터 필드라고 부릅니다.

작은 화살표들이 위치에 따라 방향을 조금씩 바꾸며 굽이치는 벡터 필드.
펄린 노이즈의 값을 각도로 바꾼 벡터 필드. 가까운 화살표들은 비슷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입자를 놓고, 입자가 있는 위치의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도록 합니다. 화살표를 지우고 입자가 지나간 자리만 남기면 어떻게 보일까요?

여러 입자의 가는 선들이 벡터 필드를 따라 휘어지고 모이며 만들어낸 궤적.
방향을 따라 이동한 입자들의 궤적. 위의 화살표와 같은 규칙을 더 넓은 화면에서 적용했습니다.

입자는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지만, 전체를 보면 함께 휘어지고 모이는 흐름이 드러납니다. 화면에 화살표가 없어도, 지나간 흔적을 통해 그 뒤에 있던 규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방식에 끌리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질서가 있다는 느낌을 움직임으로 전할 수 있으니까요.

같은 세계 안에서 다르게 움직이는 우리

그런데 제가 만들고 싶은 세계에는 흐름을 따라가는 입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우리 각자를 놓아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같은 흐름 속에 있다고 해서 똑같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크게 흔들리고, 누군가는 조금씩 방향을 바꿉니다. 작품에서는 그런 차이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질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입자들이 받는 힘의 방향은 그대로 두고 질량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같은 힘을 받을 때 질량이 큰 입자는 속도가 더 천천히 변하도록 했습니다. 질량을 바꾼 뒤 같은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해보면, 같은 세계에서도 다른 궤적이 만들어집니다.

같은 흐름, 다른 질량. 질량을 바꾼 뒤 ‘처음부터’를 누르면 같은 출발점에서 움직임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정지 화면에도 입자의 궤적이 표시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용도 담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만난 뒤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고, 제게는 작은 만남이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세계가 우리를 움직이는 동안, 우리도 서로의 세계를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예전 작업에서는 화면에 새긴 이름과 입자가 만날 때 흔적을 남기거나, 입자의 색과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여러 존재가 같은 공간에 놓이고, 각자가 다른 존재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도록 발전시켜보고 싶습니다. 만남이 끝난 뒤에도 바뀐 궤적이 이어지도록요.

무작위함 속의 질서

처음에는 무작위한 움직임에서 어떤 흐름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직접 규칙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입자를 움직여보면서, 제 관심은 그 세계 안에 놓인 존재들로 옮겨갔습니다.

우리는 흐름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영향을 받고, 누군가를 만나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흔적을 남깁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태도도, 어쩌면 그 움직임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세계가 어떻게 정해져 있든, 저는 그 안에서 직접 살아가고 다른 존재들과 부딪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이 생각을 「무작위함 속의 질서」라는 작품으로 발전시켜 전시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하나의 흐름 안에서 시작한 움직임들이 서로 만나 달라지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흔적을 통해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이 글의 예시들은 그 세계를 만들어가는 첫 실험입니다.